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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꿀팁

미세먼지 많은 날, 달리기 해도 괜찮을까?

1.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

읽기만 해도 당장 달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 있다. 켈리 맥고니걸의 <움직임의 힘>, 남혁우의 <달리기의 모든 것>, 박수현의 <웰니스> 같은 책을 읽다 보면 당장 뛰쳐나가서 달리기 그 자체의 즐거움을 갈망하게 된다. 특히 달리기의 매력에 한 번이라도 빠진 사람은 그렇다. 당장은 뛸 시간과 여건이 안 되도, 언젠가는 5km, 10km씩 달리고 싶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유튜브 채널 '3분 운동과학'에 올라온 <달리기를 꼭 해야 하는 이유!!>라는 짧은 영상으로도 그런 갈망은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그 영상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출처 yes24



나는 달리기를 사랑한다. 물론 주로 하는 취미 운동은 헬스(웨이트 트레이닝)다. 그만의 매력이 있고, 외적인 변화를 가장 크게 이끌어 내는 운동이다. 그동안 종합격투기, 검도, 수영, 홈 트레이닝까지 다양한 운동을 해 왔다. 하지만 결국 가장 내가 갈망하고 사랑하는 운동은 달리기다. 뛰는 동안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 숨이 턱에 차는 감각, 뛰는 동안 보는 좋은 풍경.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처음 달리기를 한 건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수능 결과가 어찌 되었건 일단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시간은 남아 돌았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오랜만에 겪는 완전한 자유가 생겼다. 덕분에 살이 엄청 쪘다. 10여 년 전만 해도 헬스는 아저씨들이나 하는 운동이었다. 당시 내 고향은 헬스장 말고는 딱히 스포츠 시설도 없었다. 그래서 냅따 달렸다. 바닷길을 따라서 달렸다. 달리는 요령도 장비도 없이 그냥 했다. 시간도 떼울 겸, 다이어트도 할 겸. 대략 2~3km 정도 뛰었던 것 같다.


직장을 얻고 나서야 운동에 본격적으로 흥미가 생겼다. 종합격투기를 1년 정도 하다가 이사를 하며 가까운 헬스장에 정착했다. 그렇게 속된 말로 '헬창'의 길을 걸었다. 주5~7일, 1시간 30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그러다 2020년 온 나라가 코로나19에 휩싸였다. 헬스장은 문을 닫았다.


헬스 금단 증상에 빠진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몸이 찌뿌듯하고, 운동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피곤하고 무기력했다. 몸은 일반인 수준이지만, 마음만은 헬창이었다. 결국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천변을 쭉 따라 달리다 보니, 헬스나 격투기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몰입, 맑은 공기, 좋은 풍경.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잡생각은 없어졌다. 근육량은 별로 늘지 않았지만, 체지방은 많이 줄었다. 정신건강과 체지방 감소에는 달리기가 딱이다.


나의 최근 달리기 기록



특히 정신건강 측면에서 그 어떤 운동보다 달리기가 월등히 좋다. 만일 우울, 불안, 불면 증세가 심하다면 (필요하다면 약물 처방과 함께) 풍경 좋은 곳에서 달려보자.  달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신경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실제 실증적인 연구에서도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이 정신건강 문제 개선에 굉장히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달릴 때 우리 몸에서 행복과 관련된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한다. 또한 학습, 기억, 인지, 정서와 관련된 여러 신경전달물질(BDNF 등)도 나온다.


2. 날씨와 달리기

러너(runner)들은 달리기가 시간, 장소, 장비에 제약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나처럼 한 번 뛸 때 5~10km 혹은 그 이상을 뛰려면, 좋은 장소를 찾기 어렵다. 요즘은 학교 운동장도 저녁에 폐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천변, 강, 바다를 따라서 뛸 코스가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이 더 많다.

달리기는 날씨의 제약도 크다. 한국 날씨는 거의 항상 뛸만한 날씨가 별로 없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닥이 얼어 있을 때도 가끔 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다. 그마저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는 러너도 많지만...


그렇다면 봄, 가을에는 어떨까? 기온과 습도만 놓고 보면 딱 뛰기 좋다. 하지만 걱정되는 치명적인 한 가지! 바로 '미세먼지'다.


3. '달리기의 이점'이 '미세먼지의 영향'을 상쇄할까?

어떤 이는 미세먼지가 안 좋긴 하지만, 달리기의 이점으로 충분히 덮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세먼지 많은 날 달리고, 산책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그렇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일까? 정말 미세먼지의 악영향을 산책, 달리기, 등산으로 상쇄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미세먼지는 단순한 흙먼지가 아니다. 미세먼지는 '발암물질'이다. 미세'먼지'라고 하니까 그저 크기가 좀 작은 일반 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흙먼지가 아니라 중금속과 각종 화학물질을 포함한 '발암물질'이다. 산과 들에서 흘러오는 먼지가 아니다. 미세먼지의 주범은 공장과 자동차다.


출처 서울신문



미세먼지의 악영향은 다양하다. 호흡기는 물론 뇌와 심혈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반면 달리기의 이점은 제한적이다. 달리기가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건강에 좋긴 하지만, 미세먼지를 걸러내진 않는다. 심폐기능을 증진하긴 하지만, 혈관을 돌아다니는 미세먼지를 배출하진 못 한다. 학습, 인지, 기억, 정서에 미치는 좋은 신경전달물질을 촉진하긴 하지만, 뇌에 쌓인 미세먼지를 씻어내진 않는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로토닌과 BDNF를 얻어서 좋은 인지 기능과 정서를 촉진할 수 있다. 또 동시에 아주 적극적으로 발암물질을 흡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로토닌과 BDNF가 그 발암물질을 걸러주는 기능을 하진 않는다.


러너가 미세먼지 많은 날 달린다면 30분 이상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발암물질을 흡입한다. 흡연자보다 더 안 좋다. 보통 흡연자는 담배를 한 번에 30분 이상 피우지도 않고, 들이마시는 숨의 양도 러너보다 훨씬 적다.


달리기의 이점이 미세먼지의 악영향을 상쇄하지 못 한다. KF94 마스크를 쓰고 뛸 수도 있지만, 금세 땀에 젖어버린 마스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발암물질을 막아줄지도 의심스럽다. 그러니 미세먼지 많은 날은 쉬던가, 공기청정기가 빵빵하게 돌아가는 실내에서 트레드 밀(런닝머신)에서 달리는 걸 추천한다.


달릴 때의 좋은 기분도 좋고, 달리기로 얻는 여러 이점도 많지만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달리기를 너무 좋아하지만, 미세먼지 많은 요즘에는 정말 달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고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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